산재된 일들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인천항 부두에 도착하였다. 내게 있어서 처음인 선편의 숙식경험은 좋은 인상을 남겼다. 2007 한중미술서예교류전의 원정대는 23시간 이후 진황도에 도착하여 중국측의 인도로 수 시간을 이동하고 또 이동하였다. 한참 후 일행은 ‘저주시’에 도착하였다. 안내원은 일행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곳에 데려가 나름대로 힘주어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는 전임 대통령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이 앞서서였는지 그리 반갑거나 흥미를 갖지는 못했다. 
  마침내 오픈행사를 가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성대하거나 중국측의 작가 및 참여 인원의 졸속에 크게 실망하였다. 교류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은 중국측 작가들의 회화 작품 수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에 비하여 서예작품 수의 일변도를 보였으며, 벼루전시장으로 착각이라도 할 번한 벼루작도 함께 전시를 하여 참으로 맛없는 비빔밥을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그림을 그리는 나로서는 대단한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교류전의 개선과 대안 그리고 비판에 앞서 우선 그래도 중국측의 한 가지 배려는 잊을 수 없다. 우리측의 일행을 위한 몇 가지 공연은 무척이나 고마웠고, 우리가 회답해야할 숙제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지면을 할애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이웃나라들과의 교류전을 가질 때는 제대로 된 의식을 천명하고 싶은 마음 더욱 크고 간절하다. 무슨 행사만하면 그저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치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라고 누구나 인식하면서도 토해낸 것을 다시 주어먹는 개처럼 또 다시 회자되는 수다쟁이의 대열에 합류하는 공범?들은 바로 지금의 우리 자신이 아닌가를 솔직히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오픈식 후에 협정서 교환 및 기념촬영을 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허구의 끝이 보이는듯하여 여간 메스꺼운 게 아니었다. 중국측의 서예작품도 많지는 않았지만 서예 일변도의 작품을 볼 때 개인적으로는 불쾌할 정도로 실망하였고, 노파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술이 서예의 시녀가 된듯하여 상할 대로 상한 존심은 바닥에 떨어져 허우적거렸고, 그 잘난 쇼핑에 끌려가듯 발길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우선 기획을 어떻게 하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 또한 그 모든 것을 이끌어야할 리더의 총명함이 요구된다. 그리고 작품 자체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담론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미나 및 포럼 등의 부조화와 점철된 의식의 망각으로 잃어버린 현 주소를 직정하게 리서치 해야 한다. 또한 나라 간 교류전의 시·공간적 제약과 비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손바닥만 한 작품의 크기는 언제 해제될 것인가? 작품 수가 많은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질적인 면을 무시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리더는 그 부분도 분명히 사려 깊은 태도를 취해야 될 것이다. 물론 이웃 나라들과의 문화 및 각종 풍습을 맛보는 것으로 심리적 거리를 좁혀가는 일들이 교류전의 생리로써 포함될 수도 있겠지만 그저 형식적인 작품하나 던져 놓고 여행목적에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작가로서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식 없고, 알맹이 없는 행사는 오래갈 수 없는 법이며, 고로 사상누각일 뿐이다. 물론 3년에 한 번씩 집행부의 재편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누가 그 자리를 리드하더라도 기본적 축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미술을 등에 업고 정치적 속성과 형식에 매료되지도 말아야할 것이며, 자신의 직무와 위치를 이용하여 방종의 기회를 삼지도 말아야할 것이다.
지금 세계의 경제는 경제 자체만을 가지고는 부를 축적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거기에는 예술이라는 코드를 접목할 때 많은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진정한 경제와 삶의 맛을 알아가게 된다. 이러한 것을 귀로는 많이 들어 왔겠지만 아직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고사하고 인식도 못하는 도내 기관들의 고매한 군단들이 철밥통의 자리만 지키고, 잉크만 소비하며, 역겨운 충신들의 달콤한 입발림의 최면에 걸려 혼수상태가 되어버린 작금의 세상에, 괴로워하는 내 꼴에 대하여 세월이 무척이나 아까운 생각이 든다. 

  너무도 힘들다. 이제 안녕이라고 말할 시간이 된 것 같다. 이제 무거운 짐을 벗을 때가 된 듯하다. 이런 속에서도 나를 위로 하는 한 놈이 이었다. 그 놈은 귀국길인 망망대해의 칠흑 같은 어둠의 선상위에 홀로 있는 나를 비춰주는 창공의 달이었다. 그 빛의 아름다움은 나의 가슴을 아리고 설레도록 만들었으며, 절대고독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2007. 11. 22

강 호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