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선생님과의 만남....
충북일보 기고/ 2013 운보 탄생 100주년의 회고
운보 김기창 선생님과의 만남
충청북도미술협회장 강호생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운보선생님을 처음 본 것은 대학교졸업 후의 일이다. 물론 지면을 통해서는 여러 번 운보선생님의 작품을 뵈었다. 1987년도 동숭동 대학로의 문예진흥원에서 전시회를 치르고 있을 때 운보선생님이 방문을 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기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진의를 느낄 수 있었다. 위풍당당한 체구와 특유의 빨강양말, 모자, 지팡이, 담뱃대 등의 모습은 함께 기념 촬영한 사진이 있기에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님도 전시기간 중 처음 뵙게 되어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거장을 대할 때 짐짓 생각하는 거리감이나 위압감 등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순수하고 맑은 어린애 같은 음성과 잔잔하고 투명한 대화에 선입견적 격식은 온데간데없었다. 역시 운보선생님도 백남준 선생님께 느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름 이들의 세계에 대학을 갓 졸업한 사회의 초년생으로서는 큰 위안과 용기를 얻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얼마만인가? 전통 채색화부터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까지 동서미학을 넘나들며 한국 근대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우향 박래현 선생님의 회고전이 호암갤러리에서 열렸다. 아내를 잃은 그 심정이 지금도 전달이 된다. 전시회를 보고 밖으로 나왔는데, 운보선생님은 대리석 둔덕에 걸터앉아 있었다. 다가가고 싶었지만 순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팡이를 지탱하고 있는 힘없는 팔과 빨강양말에 흰 고무신을 신고 다리를 포개 앉은 처량함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옆에는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고 오로지 홀로만 그 자리에 천금 같은 무게감으로 땅을 응시하고 있었다.
또 얼마가 지났을까? 운보선생님의 타계 후 잠깐 동안 운보재단의 일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수많은 책과 생전의 그림도구들을 정리하면서 여전히 들리는 운보선생님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나 역시 선생님의 그림사랑과 책사랑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문적 서적과 많은 도록의 정리 자체만으로도 배움의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 깜짝 놀란 것은 말과 듣기를 대신했던 운보선생님의 필담을 발견했다. 더 이상 할 말을 잊었다. 상당량의 필담 등은 참으로 소중한 자료이기에 고이 다시 싸서 잘 보관하였다. 정말 많은 작품 수에 놀라웠지만 반면 미술관에 남아있는 작품 수는 너무도 적었다. 다재다능함을 익히 알 수 있듯 초기의 사실적 작품의 구상미술시기, 예수의 생애를 담은 신앙시기, 청록산수 및 바보산수시기, 말년의 추상시기 등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화를 전공하여 수묵의 무궁함을 체험한 나는 운보선생님의 탈법한 필선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거기에는 시각적 논리와 개념표상 너머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 그러함이 자연(自然)이듯이 내면 스스로의 유영은 신(God)과의 노님을 가진 것이다. 이 여운은 우리가 지탱할 수 있는 선물을 남긴다. 탄생 100주년이 된 지금도 우리는 이 여운 속에 그리움으로 그 이름 ‘운보’를 부르고 있다. (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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