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G, HOSAENG

    돈(豚, momey)의 보조적 재현으로 나타난 원과 육면체들의 잉여는 작가 강완규의 쾌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근작 속에서 작가는 돈(豚, momey)이라는 다중적 우의를 언어의 재료로 선택하여 벤야민이 언급했던 언어의 매체성을 공고히 하고 있다.
    즉, 돈(豚)은 돈(momey)을 깔고 앉아 있거나 서있고, 원형의 돈을 기대고 있거나 밀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당당하거나 비굴한 모습도 포착되고, 올려보며 도전적 자세를 취하는가 하면 내려다보며 멸시에 찬 눈으로 응시하기도 한다. 작가는 돈의 구조에 의도적으로 알레고리(allegory)를 설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실상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각과 유사한 것으로 더 점잖고 고급적 기표를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의 일부분을 통해 전체를 말하고자 함은 작가의 지적향기를 느끼게 한다. 직접 예기치 않는 우회방식은 파고드는 힘이 더 강할 수 있다. 돈(豚)에 대하여 작가가 상반되게 말하는 통상 복과 재물의 의미 그리고 뚱보와 바보로 구분하지만 사실 둘은 뗄 수 없는 상보관계를 갖는다. 더러는 우매함과 식탐이외도 더럽고 추함, 권력과 만용 등으로 비유되는 돈(momey)도 동일한 맥락에서의 알레고리로써 사실주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알레고리와 대조되는 은유 즉 메타포(metaphor)로 직접 표현하기도 한다. 원관념 뒤의 보조관념을 빌어 묘사된 작품 '비만(obesity)'은 몸통 그 자체가 하나의 원통으로 제작되어 그 통 속에 아예 갇혀 버렸다. '드럼통 같은 돼지'로 묘사하는 낭만주의적 시각은 작가의 자명함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작품 '배트맨'과 '슈퍼맨' 등에서는 죽은 은유(dead metaphor)를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배트맨의 활동무대인 고담시는 가상의 도시로 각종 사건과 사고가 많은 실제 도시에 비유된다. 파괴된 도시의 암울성과 재건의 희망을 동시에 토로하는가 하면 악(惡)을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선(善)의 폭력성을 의문해 보는 방식이다. 작업의 양에서 보는바와 같이 작가는 쉬는 게으름을 범치 않는 만큼 생각도 너무 다양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마드적 사고는 즐거움이 있는 반면 정착이 없기에 떠도는 삶을 산다. 그렇다고 안정되고 고정된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창작 앞에서의 발가벗은 작가이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 달가운 모습이라 여겨진다.

    이번 강완규 작품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작품과 좌대의 동일성'이라는 점이다. 브랑쿠시는 작품과 받침대를 조각의 일부로 보아 구분 두지 않았다. 이처럼 강완규의 작품은 작품과 좌대를 동체로 보고 있으며, 이유는 그의 환유적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필수적 길목이 되기 때문이다.
    지폐 모양의 평평한 화강석들을 교차로 쌓았거나 계단식으로 만든 것, 정방형의 비어있는 구멍, 다 닳아진 지폐모양의 좌대 위를 포만과 위선 또는 언제 미끄러져 떨어질 줄 모르는 불안감으로 버티고 있는 돼지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작가는 좌대와의 동체를 삼을 수밖에 없었지만 얼핏 돋보여야할 원작의 맛이 약해보일 수도 있는 것은 좌대의 동어 반복적 치장이라 말할 수 있다. 반복은 미의 경제성을 낳지만 지나치면 피곤한 것이 되며, 이렇게 나열된 작품과 좌대의 동일성적 전개는 산문적인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돈-contempaltion No.8 / 48×93×37cm
브론즈,오석 / 2010

   작가의 또 다른 센스는 돈(豚)과 공존하고 있는 정방형의 프레임인데, 정형화되고 디지털적 느낌으로 번질 수 있는 부분에 딱딱함과 단조로움의 파괴를 취하는 방식을 선택하여 손끝에서 찍어 바르듯 터치하여 아날로그적 맛을 일구어낸다. 이는 회화에서의 태점(苔點)과도 같은 감각적 표현의 하나라고 볼 때 작가의 또 다른 분별력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조각품은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탐욕을 직육면체에 가두어 돼지의 살이 조그마한 구멍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가하면 엉덩이는 야릇한 관능미를 느끼게 하여 한 걸음 다가서게 하는 마력도 있다.
    그리고, '돈(momey) 앞에 꿇어 앉아 굴복하고 있는 돈(豚)' 작품의 모습에 작가의 주제적 알레고리는 절정에 다다른다. 원형의 동전과 직사각형의 지폐가 각본처럼 맞물려 있다. 상하좌우의 안정된 조형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의 조소(嘲笑)어린 표정은 일품이다. 그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돈(momey)과 권력에 아첨하고, 굴복하는 순간 이미 탐욕으로 살찌워진 나의 또 다른 돈(豚)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유는 무얼까?

    이와 같이 작가 강완규는 마치 보편적 현상으로 확대되어 이중적 가면을 쓴 현대사회의 우울함과 슬픔 속에서도 다시금 찾고자 하는 희망의 횃불을 돈(豚, momey)의 환유를 통해서 외치고 있는 것이다.

20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