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 동안 ‘문화의 향기’란 원고 청탁의 제의에 나는 망설였다.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는 나로서는 여간 일거리가 아니다. 오늘은 동안의 일들을 상기하며 잠이 오지 않는 이 새벽에 몇 글자 적어본다.
가끔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전화가 걸려오곤 한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할 때도 있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밑도 끝도 없이 미술계에 김 아무개를 알고 있느냐는 등부터 그 전화의 종류는 다양하다. 대부분은 성실하게 답변하는 편이지만 몹시 바쁠 땐 양해를 구하여 다음으로 넘기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에 대한 판단을 내려달라며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의 작가가 유명인이냐 무명인이냐 하며 작가의 작품가격에 대하여 저울질 하는 질문을 쏟아낼 때도 있다. 
  작가의 유명과 무명, 작품의 좋고 나쁨에 대한 가치판단은 다양한 견해로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자연주의 입장 그리고 현상학파에서는 초월적 존재, 칸트주의 계보에서는 선험적 주관의 내재, 또한 경험주관을 넘어선 객관적 본질로서의 가치를 세우느냐에 따라서 그 견해의 입장이 달라진다. 김 아무개는 좋은 작품good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좋아하지like 않을 수도 있다. ‘좋은good 작품’이 말 그대로 ‘좋다’는 감정이 지향하는 대상이라면, 환언하면 ‘What is good’이 ‘What is liked’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한다고 반드시 ‘훌륭한’, ‘뛰어난’ 의미를 내포할 수는 없는 것이며, 반면 ‘good’이라는 말로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 등은 비단 미학의 영역만이 아닌 인식론의 영역이나 윤리학의 영역에서도 충분히 논의 된다. 
  미美는 결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 자체에 ‘좋다’, ‘나쁘다’ 등의 감정을 만들어 내는 또 다른 특성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주관에서 비롯되는 의식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유야무야한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주관이 빠진다면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우리의 주관이 아무런 정서적 촉발을 받지 않을 것이며, 그 대상을 ‘아름답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관에 모든 판단을 일임하는 경우에는 ‘독단 아닌 독단’의 역설을 고려해야 하며, 나아가 타인의 견해를 존중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각자가 시선의 다름과 한계로 말미암아 개인은 대상의 모든 측면을 다 보지 못하며, 그 대상은 언제나 음영(陰影)지워져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가치판단의 간략한 비교로 알 수 있었듯이 모순된 결론이 있다 할지라도 서로의 다른 시각을 존중하다면 아마 그 둘은 서로를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상대방이 그 대상을 좋아like하는 것을 충실하게 ‘공감’하지는 못할지라도 아마 그 작품이 ‘좋다good’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다가오고 있는 즈음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다만 경제적 수단으로써의 가치매김에 분주한 반면 자신의 심미안은 등한히 하는 이들이 산재한듯하여 씁쓸한 마음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