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프랑스를 다녀왔다. 에어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기위해 가기전날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오전 10시에 이륙하기 때문에 적어도 2시간 전에 도착해야만 했다. 청주에서의 인천공항행 버스의 첫차를 타고 간다 해도 빠듯한 시간인 듯하여 안산 매형네 집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설잠 속에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이슬을 맞으며 일단 택시에 몸을 실어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리고 난 후였을까? 아참! 내 그림! .... 거의 공항에 왔을 때 나의 어벙한 행동이 내 몸을 거의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대형 그림 3점을 말아 넣은 그림통을 안산시 도로에다 그대로 놓고, 다른 그림들이 들어있는 큰 가방만 챙겼던 것이다. 나의 건망증에 부득부득 한숨을 쉬면서 온갖 생각들로 내 머리는 카오스로 꽉 차올랐다. 옛날에 집 근처의 낚시터에 간 적이 있었다. 도착해보니 아주 중요한 ‘낚시찌’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찌를 챙기러 집에 돌아온 나는 무엇 때문에 집에 뒤돌아 온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낚시터로 가고 나서야 낚시찌가 보이지 않는 사실을 알고, 나는 나의 건망증에 완전 바위가 되어 침묵으로 낚시대를 걷어치운 사실이 있었다. 

  그 때의 악몽이 믹서 되면서 나의 에고(ego)까지 질책하며 한탄하고 있었다. 뒤돌아 간다고 해도 과연 그 그림이 있을까? 아니 뒤돌아 온다고 해도 주어진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까? 옆에서 질문하고 있었던 택시 기사의 예기도 인식치 못할 정도였다. 손 뻗으면 금방이라도 잡힐 듯이 아른거리는 그림통! 정말 믿기지 않았다. ‘아~ 끝장이다! 아냐~ 그냥 떠나자! 이것도 아냐~ 메인이 빠졌는데...’ 온갖 혼돈에 차있는 내 머리는 영종도 다리를 지나칠 때에 다리가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너무 크고, 무거운 내 머리통을 추스르며 간신히 택시에서 내렸다. 허탈해 가만히 있는 날 본 택시 기사는 몇 마디 질문을 하면서 내 짐 보따리를 내리고 있었다. 악! 또 다시 믿지 못할 광경!.... 분명코!... 그 그림통은 택시 기사의 손에 들려 있었다. 눈을 껌벅이며 다시 응시했다. ‘야! 너!!’ 소리치는 내 모습에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기사의 표정에 아랑곳하지도 않고 나는 그 그림통을 잡아 보고, 또 끌안아 보고, 통을 열어도 보았다. 다시 태어난 기분에 내 마음은 벌써 다시금 흥분이 시작 되었다. 약 몇 분간 지옥의 터널속이 너무도 강열했던지라 그림통을 잡고 있으면서도 마치 꿈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모든 것은 공항 도착 약 10분 동안에 일어났던 내 모습 그대로였다. 아마도 건망증은 누구나가 한 번쯤은 경험했으리라. 더구나 화가들은 그런 일들은 다반사다. 더욱이 대사의 개인전을 앞두고 벌어진 내 머릿속에서의 해프닝은 잠시나마 나의 부족함과 영글지 못한 젊음의 단면이라 반성해보았다. 이제 몇 분 후면 에어프랑스에서 잠을 청하는 일만이 있다. 이제 따사로운 녹차의 향기를 마시며..., 눈 뜬 후의 파리는 그 때 가서 생각하자......